#1. 하느님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성서는 첫머리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창1:27) 물론 여기에서 '모습'은 눈, 코, 입 같은 외적인 생김새를 말하는 게 아니라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사람은 하느님의 본성을 담아 지어졌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선 우리에게 지나치게 익숙해진 서양식 신관神觀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양 정신에서 특히 한국의 민간 사상과 종교에서 볼 수 없는 신관은 우리에게 '하느님은 어떤 존재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귀한 실마리를 준다. 하느님은 우리 삶과 세계의 외곽에서 우리를 절대적 힘으로 관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 '본디의 나'로 살아있는 하느님인 것이다.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수많은 불의와 학살과 기아와 참상을 자행하거나 외면하는 분이 아니라 불의와 학살과 기아와 참상 속에서 함께 고통받는 분인 것이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이런저런 종교적 형식에 기대어 나를 초월적인 상태로 끌어올리는 행위가 아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지금 내 삶을 지배하는 온갖 부질없는 집착과 욕망들을 씻어내고 내 본디 모습으로, 하느님의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 명예나 세속적인 성공 따위에 대한 사랑을 나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는 삶을 끝내고 나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이다. 하느님은 내 안에 존재하며 또한 모든 다른 내 안에 존재한다. 내 아내에게도 나 자식에게도 내 부하나 노예에게도, '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 모든 낯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은 존재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일이자 동시에 모든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pp.202~203) #2 기도를 마친 예수는 제자들을 일으켜 자신을 체포하러 올 자들을 향해 앞장서 걷는다. 방금까지만 해도 벌벌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예수의 모습은 마치 전혀 다른 두 사람을 합쳐 놓은 듯하다. 매우 평범한 사람과 매우 비범한 사람.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은 예고된 죽음의 위협이 닥치면 공포에 질려서 번민하다 결국 숨거나 도망치게 된다. 예수도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공포에 질려 번민하지만, 결국에는 숨거나 도망치지 않고 제 길을 간다. 예수의 모습은 우리에게 '비범한 사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내는 비범한 사람으로 두 가지 유형을 알고 있다. 전사와 도사. 전사는 혹독한 싸움을 거듭 경험하면서 무쇠처럼 강해져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된 사람이다. 도사는 고도의 정신적 수련으로 삶과 죽음이란 결국 허상일 뿐이라 생각하게 된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에게 비범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예수는 우리에게 우리의 본디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범한 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만일 우리가 모두 무쇠처럼 강한 전사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공포와 번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쇠처럼 강해진다는 건 무쇠처럼 무디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주먹으로 사람을 치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던 사람이 어느새 사람 여럿을 죽이고도 태연하게 밥을 먹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강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인간성이 무디어진 것이다. 그런 전사들이 이룰 수 있는 세상은 인간이 아닌 무쇠 덩어리로 가득한 세상일 것이다.
또한 예수는 우리에게 도사가 되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포와 번민을 낳는 '색의 세계'를 뛰어넘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에게 감탄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경지는 공포와 번민을 그대로 느끼면서 그것을 이겨 내는 것이다. 약하고 흔들리는 인간이기에 공포와 번민은 당연하다. 그러나 또한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기에 그 공포와 번민을 끝내 이겨 낼 수 있다. 우리는 가장 인간적일 때 비로소 신적일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신적일 수 있다. (pp.234~235) #3. 예수는 오히려 폭력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 갈릴래아에선 크고 작은 봉기가 셀 수 없이 일어났다. 예수는 그런 현장을 외면할 수 있는 특권계급이 아니었다. 예수가 형 혹은 삼촌이라 부르던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 갔고 나중엔 친구와 동생들이 죽어갔을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오늘 이스라엘로부터 압살당하는 팔레스타인 점령 지구의 청년들과 같다.
그들이 비폭력을 지향했던 건 분명하나, 폭력의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폭력은 나쁜 거야'라고 설파하는 한심하고 염치없는 비폭력주의자들이 아니었다는 건 더욱 분명하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폭력주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싸움질을 벌여 파출소에 잡여 온 동네 양아치도 자신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침략 전쟁을 벌이는 제국주의자들도 전쟁이 싫지만 '악의 세력에 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세상에 비폭력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없는데, 온 세상이 폭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비폭력주의는 무엇인가?
비폭력주의는 오로지 폭력의 현장에서만 주장될 수 있다. 제국의 미사일 공격에 제 새끼가 찢겨 죽은 어미가 죽음보다 더한 슬픔을 뚫고 '우리는 똑같은 폭력의 보복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누구도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폭력의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1년 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는 사람이 점잖은 얼굴로 '저항으로서 폭력도 폭력이다'라고 뇌까리는 건 참으로 몰염치한 짓이며 폭력의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폭력보다 더 끔찍한 폭력이 된다.
비폭력주의의 목표는 '비폭력'이 아니라 '저항'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예수는 결코 안온한 예배당이나 연구실에서 비폭력론을 주장하지 않았다. 예수는 언제나 폭력의 현장에서 그 폭력을 몸으로 감당하며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20세기 비폭력주의 운동의 대명사'라 일컬어지지만 일각에서는 인도 '민족'에 집착하여 인민들의 정당한 투쟁을 훼방한 사람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간디조차도 '무기력하고 비굴한 비폭력보다는 차라리 정당한 폭력이 낫다'고 말했다. 비폭력주의는 폭력적인 투쟁 방법을 넘어서는 투쟁 방법이지 폭력적인 투쟁 방법에도 못 미치는, 투쟁의 정당성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유약한 인텔리들의 요사스러운 말장난이 아니다. 진정한 비폭력주의자들이 결국 폭력에 희생당하는 운명을 갖는 건, 지배체제가 그들에게서 무장투쟁을 선택한 선택한 운동가들보다 오히려 더 큰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pp.237~239) #4.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해석이나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 영성가, 비폭력주의자, 하느님의 아들 등등. 그런 모든 해석이나 의견을 존중하더라도 절대 생략되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가 '지배체제에 의해 사형당했다'는 사실이다. 예수와 관련한 모든 해석과 의견들은 예수가 '왜 사형당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라 말하는 사람들은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인 그가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예수가 영성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영성가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영성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예수가 비폭력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비폭력주의자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비폭력주의자'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서 예수의 모습에서 제 마음에 드는 한 부분만 똑 떼어 내어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입네, 예수는 영성가입네, 예수는 평화주의자입네 하는 것은 예수를 욕보이는 일이다. 사형은커녕 1년 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이 안락하게 살아가면서 예수 흉내로 세상의 존경과 명예를 구가하는 건 예수를 팔아먹는 짓이다.
사회적 모순이 존재하는 한, 다들 세상이 좋아지고 달라졌다고 해도 어느 한 귀퉁이엔가 인간으로서 위엄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예수를 좇는 사람은 지배체제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수가 살던 세상처럼 지배체제와 불화했다고 해서 쉽게 죽임을 당하는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지배체제의 직간접적 탄압과 주류 사회의 배제,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에게서 (심지어 같은 길을 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일어나는 오해와 곤경은 다르지 않다. 지배체제와 불화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오해와 곤경에 처하지 않으면서, 이쪽에서도 칭찬받고 저쪽에서도 존경받으면서, 예수를 좇고 있다 말하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pp.254~256) written by 김규항 (ⓒ 김규항, 2009) published by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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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다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오래도록 고독하게 남아서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quoted from 라이너 M. 릴케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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