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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미끼들의 향연... 파닥파닥.... 읽기 귀찮으시면 이 문장 하나만 보셔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기도 해요. 써놓고 보니 좀 폭탄발언처럼 읽히긴 합니다만, 이 영화를 폄하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고...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이 영화에게 이런 표현은 오히려 칭찬, 혹은 칭찬 아닌 칭찬이 됩니다.
-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제 스스로 낸 것이긴 하지만 큰 뼈대는 대중문화 비평계의 아이돌(...) K모님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잡았다는 점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그분과의 대화에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 <박쥐>를 보고 나서 가장 강하게 다가왔던 감상은 일단 이 영화는 어떤 코멘트를 달기엔 전반적으로 너무 밋밋하다는 것이다. 어디 하나 뭔가를 붙잡고 주름을 잡아 얘기해 볼만한 지점, 그러니까 '특이한' 구석이 없다. 잔인하고 파격적인 묘사? 괴이한 유머 감각? 여전히 수준급인 음악과 미술? 우리가 어디 박찬욱 영화를 어디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로 이 영화를 추어올리기엔 뭔가 부족하다. (송강호의 사타구니를 몇 초 구경했다고 해서 그 그래픽한 충격을 <복수의 나의 것> 시절에 비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박쥐>는 박찬욱의 전작에 비해 그런 독한 "장식"을 오히려 다소 절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가 지나치게 이미지의 향연에 치중하고 있다고 평하지만 그런 식의 스타일 과잉은 <친절한 금자씨>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더 심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외관을 지나 속내용을 뜯어보면 어떤가? 많은 언론기사들은 이 영화가 뱀파이어 장르물로서 독특하다는 언급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금욕의 상징인 신부와 뱀파이어를 맞물린 설정이 독특하다는 말이다. <박쥐>를 뱀파이어물과 치정물의 1:1 배합으로 봐야 할까? 그보단 인간의 욕망 문제를 다룬 <테레즈 라캥>의 치정극을 그 핵(核)에 품고 외피를 흡혈귀의 패션으로 두른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예컨대 상현과 태주의 건물 옥상 점프씬은 <스파이더맨>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스파이더맨>이 힘에 대한 '쾌락'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해석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나는 이 영화가 뱀파이어물보다는 슈퍼히어로 장르에 더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스파이더맨>처럼 주인공을 이제 막 쾌락에 눈을 뜬 10대 geek 청소년으로 바꿔보는 것도 재미있는 시도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결국 주인공 상현(송강호)와 태주(김옥빈)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사실 <박쥐>의 핵심적인 줄거리는 평이한 편이라고 봐야 한다. 두 남녀가 만나서 불륜을 저지르고 본능과 욕망을 탐하다 사고를 치고 결국 파멸에 이른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가 이 큰 줄기에서 우리가 특기할 만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던가? 혹은 어떤 판단(judgment)이나 결론을 내리고 있는가? 그런 것 같진 않다. 씨네21 웹사이트에서 한 관객은 감상평에 "그러니까 지금 뭔 이야기를 하는거야?"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나의 감상 역시 여기에 가깝다. 이야기를 못 하고 있거나, 아예 할 의지가 없거나. 아마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방금 얘기를 다시 한 번 자세히 풀어보자면,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뭔 이야기를 하는 거야?"라고 말했을 때 그 '이야기'란 보통 어떤 "교훈"을 뜻한다. 교훈이란 보통 "좋다/나쁘다" 아니면 "~해야 한다(ex. '인간은 이러저러하게 살아야 한다')" 식의 문장으로 요약되는 당위에 관한 판단(judgment)이고, 포괄적인 차원에서 이런 판단은 윤리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쾌락을 위해 불륜을 저지르고 살인을 하는 윤리적 문제를 내장한 캐릭터를 동원했음을 상기했을 때, 이 점은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특히 이런 '거장' 대접을 받는 감독의 영화에서 관객들이 이러한 윤리적 판단(쉽게 말해 "거장의 한 수 가르침")을 기대한다는 점도 그렇다. 그러나 <박쥐>에서 그런 구석을 찾을 수 없었던 게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박쥐>는 열심히 종교, 윤리 등등을 아우르는 갖가지 상징과 장치를 이들은 상호교차하며 텍스트를 풍성하게 설명하는 차원에서 머무르지 그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레벨로 상승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태주가 시키는 대로 동전을 구겨버린다거나 높은데서 뛰어내리는 상현의 모습은 사탄에게 시험받는 예수의 모티브를 따온 것이고, 호루라기 처녀를 강간하려고 드는 상현의 모습은 영화 내에서 꾸준히 반복되는 일종의 '자살적 제스처'(정성일의 표현을 빌어)이며, 온몸이 마비되고 눈만 열심히 굴리는 라 여사의 시선은 '자살적 제스처'를 추동하는 원동력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부끄러움임을 암시한다. ...... 하지만 이런 것들이 뭐가 중요할까? 뭐가 어쨌단 말일까? 정작 여기에는 영화 스스로가 상현이나 태주를 두고 좋다/나쁘다라고 판단하는 스탠스(stance)가 빠져 있다. 김영진이 칼럼에서 <박쥐>가 설명하는 대신 그 자리를 스타일로 채운다("설명할 대사를 빼앗고 그 자리를 부조리한 유머로 묘사")고 평한 것을 참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의 영화들은 꾸준히 독특한 캐릭터, 혹은 독특한 상황에 처한 캐릭터를 관객 앞에 들이밀어 놓고 이들 캐릭터들에게 인간적 '연민'을 느낄 수 있기를, 다시 말해 '공감'하기를 끊임없이 주문해 왔다.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는 영화 제목부터 '공감'을 그대로 끌어와 썼고(<Sympathy for Mr./Ms. Vengence>),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정신질환자 같은 타자에 대한 존중을 주제로 제시했으며, <올드보이>에선 "(근친상간을 벌인) 아무리 짐승같은 놈이라도 살 권리는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영화에 대한 지지는 대개 이들 캐릭터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됐다. (이는 그가 제작과 각본에 참여한 <미쓰 홍당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박쥐>에선 이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나 일관된 주장... 즉 "스탠스"(stance)"라고 부를만한 것이 사라져 있다. 그냥 "이런 인간들이 있다"고 제시할 뿐이다. 그의 전작에 비해 <박쥐>에서 나타난 가장 커다란 변화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이것을 감독의 무책임으로 보아야 하는가? 나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자살과 순교는 (심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개념인가?" "생활인 뱀파이어의 존재를 당신은 용납할 수 있는가?" "뱀파이어는 인간인가 아니면 그냥 사람 먹는 짐승인가?" 따위의 민감한 논쟁거리들을 다이너마이트처럼 잔뜩 품고 있는 이런 영화에서 감독이 어떻게 위험하게 한 쪽을 취사선택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엔 그냥 적당히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역할을 충분히 끝낸 셈이 된다. 태주의 '해피버스데이' 이후 벌어지는 현상과 태주의 부부싸움(...)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동진은 "어떤 길을 택하든, 당신은 결국 독창적이고 입체적이며 복합적인 이 작품을 통해 영화적 체험의 강렬한 극단에 도달할 것이다."고 평했다. 이는 그만큼 관객이 텍스트 내에 관여하고 참여해야 할 여지가 많다는 의미의 또다른 표현일 것이다. 자, 스탠스가 사라진 자리를 스스로 메워야 하는 건 관객의 몫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영화는 판단이 아닌 질문을 위한 영화, 즉 자신의 주장을 설교하기보단 상대방 관객의 입장을 물어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예전 박찬욱 영화를 본 관객들의 일반적인 불호(不好)가 남는다. "뭐하러 저런 괴상한 장면만 가득한 영화를 찍는지 모르겠어!" 이 불쾌함은 외견상으로는 영화를 향해 나타나지만 이를 영화에 대한 몰이해나 해독불가선언쯤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는 결국 이 영화에 등장하는 현상과 태주를 향한 스탠스이기도 한 것이다. 살인과 불륜을 일삼는 뱀파이어에 대한 불호야말로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윤리적 태도라고 봐도 좋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에 대한 리액션이라고 봐도 좋다. 물론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적 차원에서 재미있게 봤다고 말할 수도 있고, (나처럼) 그냥 남 얘기로 밋밋하게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다. 고로 <박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에 어울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막 칸 영화제에서 날아온 뉴스기사에선 박찬욱이 "기절했다는 기자도 있다던데 기절한 만큼 공포를 받았다면 그것도 원했던 반응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그렇다고 <박쥐>의 지금 결과물이나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의 지형이 썩 좋은 모양새로 다가오는 건 아니다. 첫째,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와 자신의 윤리적 태도를 드러내는 행위가 섞여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되고 있다. 둘째, 이 영화가 윤리적 난제 때문에 관객의 스탠스를 드러내고 이를 충돌하게 하는 방향을 택했다면, 그 스탠스들은 결국 다양한 스탠스들의 합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위험이 있다. 너도 옳고 너도 옳다 식의 어설픈 황희 정승 에피소드식 일반론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섣불리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담아내려는 시도는 결국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는 법이다. Everything, but, nothing의 상황. 내가 이 영화의 도덕/윤리적 어젠다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밋밋"하게 느껴졌다고 말하는 건 이 때문이다.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데, <박쥐>를 다양한 반응과 독해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 이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일단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쥐>와 그 평들은 이 모든 것이 "남의 얘기"라는 인상이 굉장히 강해 보인다. 논쟁을 촉발하고 싶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용자에게 어떤 절박함으로 이야기를 걸고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는 자기 블로그에 열심히 떠들기만 하지 남의 포스팅은 잘 읽지도 않으면서 왜 내 블로그엔 방문객이 이리도 적을까 푸념하는 블로거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엔 영화나, 불만을 터뜨리는 관객이나, 온갖 미사여구와 현학적 말투에 정교한 이론틀을 동원하는 일부 평자들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애초에 정답이란 게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냥 "이런 의견이 있다"고 제시할 뿐인 셈이다. 이런 식의 논쟁은 그저 뜨뜻미지근, 밋밋하기 그지없다. 결국 당신 입장이 그냥 그렇다는 얘긴데 무슨 흥미를 더 느끼겠는가? 더구나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에 있어선 관객의 '감정이입'이나 '몰입', '공감' 같이 전통적인 미덕으로 분류할만한 요소들이 아직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같이 방임과 존중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 같은 개념을 아예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다.) 그 꼭 다문 입이 괜히 아쉬운 건 이 때문이다. 그 입이 누구의 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by lyh1999.
200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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