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19일
The Mist: 내우외환
- 이 영화에서 유독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의 이름이 눈에 띄는 건 <쇼생크 탈출>이나 <그린 마일> 같은 스티븐 킹 작품의 성공적인 영화화 때문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가 한 때 <인디아나 존스> 4편의 각본을 썼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가 <미스트>에서 만들어낸 곤충 장면은 인디 4편의 개미 씬보다 수백만배는 더 무섭습니다!
- 스포일러 주의.

최근에 주제 사마라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스티븐 킹의 단편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도 그 소설과 비슷한 부류의 작품처럼 느껴졌어요.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리는 재앙을 설정하고, 그 가운데 정신병원에 수용된 실명 환자들이 빠져드는 지옥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설정부터가 환상문학의 요소를 품고 있는데다가, 서술 중간중간에 인간 공동체의 윤리적 문제를 언급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일종의 소박한 우화처럼 보이는데, 이는 <미스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미스트>에서는 허리케인이 지나간 마을에 갑자기 안개가 덮쳐들고, 그 안개 속에 뛰어든 사람들은 정체불명 곤충들의 습격을 받습니다. 그 가운데 영화는 한 슈퍼마켓에 고립된 마을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앞에서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언급했지만, 혹자는 이 설정을 보고서 미국 드라마 <로스트>를 떠올릴 법도 합니다. 타임머신을 좀더 과거로 돌리면 <데이라잇> 같은 헐리우드 재난영화들을 거명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을 재미있게 감상한 관객들이라면 <미스트>를 통해 커다란 정서적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미스트>는 괴물과의 혈투를 다루는 SF영화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미국식 영웅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재난영화의 전통을 뒤집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강력한 지도력으로 이끌며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이나, 그 영웅의 말에 군소리 없이 고분고분 따르는 사람들 같은 캐릭터는 이 영화에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이 영화가 대부분의 시점을 함께하는 삽화가 데이빗에게서 그런 역할을 기대해 볼법도 합니다. 그는 <로스트>의 잭(매튜 폭스)에 짝지을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슈퍼마켓에 갇힌 마을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서로 싸우고, 종교적 광기에 빠지는가 하면,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합니다. 데이빗은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그나마 온전한 판단력과 윤리적 기준을 유지하고 있고, 절망에 빠진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어떻게든 그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영화는 데이빗의 이런 모습을 영웅적인 관점에서 비추고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론 그의 노력을 처절한 실패로 귀결시킵니다. 절정 단계에서 괴물 곤충들의 출처가 밝혀지는데, 여기서 마을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 (괴물들을 불러들인 죄목으로) 희생양을 지목해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릅니다. 데이빗은 이들에게 광기에 빠져선 안된다고 호소하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흐른 마당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그와 뜻을 같이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데리고 안개 속으로 도망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기대한 영웅적 리더십의 첫 번째 실패. Lose control!
스티븐 킹의 원작은 이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고 합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소설의 결말은 공동체를 버린 데이빗 일행의 선택을 기본적으로는 지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프랭크 다라본트가 변형한 결말은 그나마 남아있던 긍정적인 기운까지 철저하게 제거해버리고 있습니다. 안개 속에서 데이빗 일행이 마주친 것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는 희망이 아니라 슈퍼마켓 바깥의 모든 사람들과 문명들이 파괴당한 절망적인 지옥경의 연장입니다. 결국 갖고 있던 총으로 나머지 일행을 모두 죽이는 데이빗의 최종선택, 그리고 총알을 모두 써버린 상태에서 데이빗 혼자만 살아남는 결말은 "영웅적 리더십의 실패"에 결정적 방점을 찍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구하지 못했으며 패닉, 광기, 도덕적 해이에 빠져드는 공동체를 무력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데이빗은 반강제적으로 공동체의 리더십을 획득하는 심슨의 정반대 면에 있습니다.
한편 영웅적 리더십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타락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 가운데 영화는 유독 기독교 광신자인 카모디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평소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만, 괴물 곤충들의 재앙이 이어지면서 그녀는 요한계시록의 구절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세상 종말이 가까운 양 교설을 퍼붓고 절망에 빠진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교주처럼 떠받듭니다.
결과적으로 카모디는 데이빗과 가장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캐릭터로 다뤄지고 있는데, 이 대립구도는 묘하게 현재 미국과 미국인이 처한 상황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저는 데이빗이 대통령으로 표상되는 리더십의 면을, 카모디가 미국이라는 공동체의 정신적 근간[기독교]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영화 속에서 극렬하게 충돌하지만, 모두 철저하게 실패하고 타락함으로써 결과적으론 한 공동체의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밖으로는 위협받고 안으로는 썩어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성일이 전영객잔 칼럼에서 지적한 대로 이 영화에서 포스트 9.11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이쯤 되면 혹자들은 또다른 영화 하나를 더 연상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입니다. <미스트>의 이야기가 다소 식상해 보인다면 그건 이미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을 비롯한 많은 영화들이 이미 미국인의 정신적 공황 상태를 만만치 않은 빼어난 솜씨로 이미 다뤘기 때문일 겁니다. (이미 저는 <로스트>, <데이라잇>, <심슨가족 극장판> 같은 일종의 '한핏줄 영화'들을 주우욱 나열하고 있는데, 다른 분들이라면 또다른 핏줄들을 잔뜩 이어갈 수 있을 겁니다.) 정성일의 칼럼을 다시 읽어보니 스티븐 킹이 원작을 쓴 것이 1980년이랍니다. 이 영화가 좀더 일찍 나왔더라면 지금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을까요?
- 스포일러 주의.

최근에 주제 사마라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스티븐 킹의 단편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도 그 소설과 비슷한 부류의 작품처럼 느껴졌어요.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리는 재앙을 설정하고, 그 가운데 정신병원에 수용된 실명 환자들이 빠져드는 지옥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설정부터가 환상문학의 요소를 품고 있는데다가, 서술 중간중간에 인간 공동체의 윤리적 문제를 언급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일종의 소박한 우화처럼 보이는데, 이는 <미스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미스트>에서는 허리케인이 지나간 마을에 갑자기 안개가 덮쳐들고, 그 안개 속에 뛰어든 사람들은 정체불명 곤충들의 습격을 받습니다. 그 가운데 영화는 한 슈퍼마켓에 고립된 마을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앞에서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언급했지만, 혹자는 이 설정을 보고서 미국 드라마 <로스트>를 떠올릴 법도 합니다. 타임머신을 좀더 과거로 돌리면 <데이라잇> 같은 헐리우드 재난영화들을 거명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을 재미있게 감상한 관객들이라면 <미스트>를 통해 커다란 정서적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미스트>는 괴물과의 혈투를 다루는 SF영화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미국식 영웅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재난영화의 전통을 뒤집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강력한 지도력으로 이끌며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이나, 그 영웅의 말에 군소리 없이 고분고분 따르는 사람들 같은 캐릭터는 이 영화에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이 영화가 대부분의 시점을 함께하는 삽화가 데이빗에게서 그런 역할을 기대해 볼법도 합니다. 그는 <로스트>의 잭(매튜 폭스)에 짝지을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슈퍼마켓에 갇힌 마을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서로 싸우고, 종교적 광기에 빠지는가 하면,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합니다. 데이빗은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그나마 온전한 판단력과 윤리적 기준을 유지하고 있고, 절망에 빠진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어떻게든 그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영화는 데이빗의 이런 모습을 영웅적인 관점에서 비추고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론 그의 노력을 처절한 실패로 귀결시킵니다. 절정 단계에서 괴물 곤충들의 출처가 밝혀지는데, 여기서 마을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 (괴물들을 불러들인 죄목으로) 희생양을 지목해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릅니다. 데이빗은 이들에게 광기에 빠져선 안된다고 호소하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흐른 마당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그와 뜻을 같이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데리고 안개 속으로 도망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기대한 영웅적 리더십의 첫 번째 실패. Lose control!
스티븐 킹의 원작은 이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고 합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소설의 결말은 공동체를 버린 데이빗 일행의 선택을 기본적으로는 지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프랭크 다라본트가 변형한 결말은 그나마 남아있던 긍정적인 기운까지 철저하게 제거해버리고 있습니다. 안개 속에서 데이빗 일행이 마주친 것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는 희망이 아니라 슈퍼마켓 바깥의 모든 사람들과 문명들이 파괴당한 절망적인 지옥경의 연장입니다. 결국 갖고 있던 총으로 나머지 일행을 모두 죽이는 데이빗의 최종선택, 그리고 총알을 모두 써버린 상태에서 데이빗 혼자만 살아남는 결말은 "영웅적 리더십의 실패"에 결정적 방점을 찍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구하지 못했으며 패닉, 광기, 도덕적 해이에 빠져드는 공동체를 무력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데이빗은 반강제적으로 공동체의 리더십을 획득하는 심슨의 정반대 면에 있습니다.
한편 영웅적 리더십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타락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 가운데 영화는 유독 기독교 광신자인 카모디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평소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만, 괴물 곤충들의 재앙이 이어지면서 그녀는 요한계시록의 구절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세상 종말이 가까운 양 교설을 퍼붓고 절망에 빠진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교주처럼 떠받듭니다.
결과적으로 카모디는 데이빗과 가장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캐릭터로 다뤄지고 있는데, 이 대립구도는 묘하게 현재 미국과 미국인이 처한 상황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저는 데이빗이 대통령으로 표상되는 리더십의 면을, 카모디가 미국이라는 공동체의 정신적 근간[기독교]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영화 속에서 극렬하게 충돌하지만, 모두 철저하게 실패하고 타락함으로써 결과적으론 한 공동체의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밖으로는 위협받고 안으로는 썩어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성일이 전영객잔 칼럼에서 지적한 대로 이 영화에서 포스트 9.11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이쯤 되면 혹자들은 또다른 영화 하나를 더 연상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입니다. <미스트>의 이야기가 다소 식상해 보인다면 그건 이미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을 비롯한 많은 영화들이 이미 미국인의 정신적 공황 상태를 만만치 않은 빼어난 솜씨로 이미 다뤘기 때문일 겁니다. (이미 저는 <로스트>, <데이라잇>, <심슨가족 극장판> 같은 일종의 '한핏줄 영화'들을 주우욱 나열하고 있는데, 다른 분들이라면 또다른 핏줄들을 잔뜩 이어갈 수 있을 겁니다.) 정성일의 칼럼을 다시 읽어보니 스티븐 킹이 원작을 쓴 것이 1980년이랍니다. 이 영화가 좀더 일찍 나왔더라면 지금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을까요?
2007/07/19
by lyh1999.
by lyh1999.
# by | 2008/07/19 11:38 | Journals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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