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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 제가 이런 글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별로 쓰고 싶지 않은 글이에요.
- 서영희는 이런 직업을 가진 역을 하기엔 얼굴이 너무 복스럽게 생기지 않았나요? 하긴 꽃단장 하고 손님 맞으러 나온 장면에 보니 긴머리로 양쪽 볼을 가려서 얼굴을 한참 갸름하게 보이게 만들었더라고요. <궁녀>에서 나온 얼굴과는 너무 달라서 처음엔 못 알아볼뻔 했습니다. ![]() 언론 기사들을 훑어보니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은 주로 스릴러 장르로서의 충실함에 집중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글쎄요, 저는 이 영화의 러닝타임 중 상당부분이 왜 이렇게 긴장감 없이 느껴졌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미진(서영희)의 하드고어 수난극이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의 장면은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버거울 정도로 자기 의도를 상당부분 성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장면의 상당수를 영화는 미로를 헤메는 추격자 엄중호(김윤석)의 시행착오와 경찰들의 무능함으로 채우고 있는데, 저는 이 부분에서 때때로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렇게까지 엇나간 것 같진 않아요. 그 웃음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공분이며, 동시에 바로 이 영화가 관객으로부터 의도한 핵심적인 정서적 반응 중 하나입니다. 필름2.0의 프리뷰 특집 기사는 이 영화가 나홍진 감독의 '시스템에 대한 분노'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저는 이 영화가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과적으론 부조리극, 더 나아가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일종의 블랙 코미디를 지향한 형국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우왕좌왕하는 경찰들의 모습은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웃깁니다.) 덧붙이자면 <추격자>는 최근 한국영화 중에서 <올드보이>가 보여준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을 가장 제대로 재현한 케이스로 보이는데, 그 성찰이란 바로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조폭 메커니즘에 관한 것입니다. 작년 개봉되었던 <궁녀>를 이를 설명하기 위한 좋은 사례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영희의 또다른 수난극!) <궁녀>를 제작한 정승혜 영화사아침 대표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여고괴담>의 조선시대 궁 버전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만, 실제 결과물은 '<여고괴담>'이란 수식어로 모든 것을 대신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었어요. <여고괴담>(적어도 1편과 2편)은 억압적인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여성들 사이의 정서적 교감을 보여줍니다만, <궁녀>는 그보단 조직의 억압 메커니즘에 더 치중하는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이란 계급적 사고방식에 기초한 폭력입니다. 조직 내에서 원인불명의 자살 사건이 발생하자 조직의 상위 관리자들은 '모두의 무사안위'를 명목으로 진상을 밝히기보다는 사건을 조용히 묻어두려고만 하죠. 영화의 결말이 궁녀 집단 모두가 손바닥에 칼을 그음으로써 함구를 맹세하는 의식으로 끝난다는 걸 상기해 보시길. 게다가 이를 위해 감찰상궁(김성령)은 영화에서 탐정 노릇을 하는 의녀 천령(박진희)을 사사건건 찍어누릅니다. 이런 대응방식은 현대의 조직들과 비교하자면 여고보다는 군대의 그것에 더 가까습니다. 딱히 여고에 비교할 정도로 여성적인 대응이란 느낌도 안 들고요. <궁녀> 식의 알레고리가 아니라 그냥 현실 자체를 그리는 <추격자>에서 이러한 묘사는 보다 전면화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선 크게 두 개의 조직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엄중호와 그의 부하격인 오좆으로 단촐하게 구성된 사(私)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경찰이나 검찰, 서울시장 등을 통해 표상되는 공(公)조직입니다. 영화는 초반에서 보도방을 운영하는 엄중호가 허름한 사무실에 틀어앉아 일하는 광경을 보여주는데, 사무실 장면에서 묘사되는 중호와 오좆의 관계는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조폭식 계급관계의 기본 공식과도 같습니다. 엄중호의 캐릭터는 '전직 형사'라는 것만 떼어놓고 보면 그동안 한국영화들이 걸핏하면 다뤄온 조폭/건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뭔가 많이 모자라보이는) 하층 계급은 상층 계급에 찍소리도 못하고 복종하고, 상층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하층을 자기 입맛대로 윽박지르며 경멸합니다. 그리고 그 경멸은 아주 다분히 남성적인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고요. 살인마 지영민이 끼어들면서 이런 계급관계의 양상은 점점 경찰 조직 안으로 이동합니다. 저는 앞에서 <궁녀>의 궁녀 집단을 군대에 비교했는데, <추격자>의 경찰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경찰이나 군대 모두 최적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조직이지만 그 합리성이란 어디까지나 상층 계급의 시선에서 그들의 편의대로 정의한 합리성이고 그래서 그 합리성은 결국 어떻게든 하층 계급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합니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서류에 집착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image]만 믿고, 자기 목숨 하나 건사하는 데 급급한 경찰의 모습에 분노를 느낄 겁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줄거리가 전직 형사 엄중호가 느끼는 사형[私刑/死刑]에의 욕망으로 귀결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 되고요. 이렇게 영화는 열심히 비효율적인 공조직에 대한 분노와 사형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지만 과연 그런 분노나 욕망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선 답변은 유보됩니다. 지영민을 향해 치켜든 엄중호의 망치가 뒤늦게 달려온 경찰에 의해 제지당하는 것처럼요. 왜냐하면 여기엔 정당하지 않다는 답과, 정당하다는 답이 모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자의 답변을 살펴볼까요. 엄중호의 사형/복수가 정당하지 않은 이유는 살인이 옳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엄중호 역시 경찰과 다를 바 없는 폭력적인 조직 메커니즘의 대변자이기 때문입니다. <추격자>는 결과적으로 한국사회를 거시적 측면에서 세 가지 계급으로 재구성합니다. 하나는 어떻게든 자기가 더 높은 계급에 올라서서 낮은 계급에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때리는 놈(The violent)', 다른 하나는 그 폭력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미지의 타자 즉 '미친 놈'(The psychopathic),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러한 무한 폭력의 세계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무고한 놈(The innocent)'입니다. 때리는 놈과 무고한 놈만 있을 땐 상하 관계가 확실하지만, 여기에 서열화시키기 애매한 '미친 놈'이 개입하면서 이 세 계급은 다른 계급처럼 피라미드 모양으로 구조화되기보다는 일종의 삼위일체처럼 엉켜들면서 관객의 공분을 부추기기 위한 적대적 공범 관계를 구성합니다. 즉 관객은 미진이 죄없이 수난을 당하다 죽는 걸 보면서 절대로 감정 이입이 불가능한 물음표의 타자 영민을 중호가 때려도 좋다는 무언의 응원을 보내게 되는 거지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호 역시 미진을 착취하는 계급이라는 사실은 잊혀져 버립니다. 저는 여기서 경찰과 중호를 서로 다른 계급으로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이 영화에서 경찰은 살인마를 잡아서 실적을 올리려는 욕심에만 사로잡혀 미진을 구하는 일에는 관심을 놔버리는데, 이는 분명 자신의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다른 인간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남성적 폭력을 갖춘 높은 계급으로서의 때리는 놈이 낮은 계급으로서의 무고한 놈에게 갖는 전형적인 태도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때리는 놈들은 맞는 놈들에게 걸핏하면 '인간[자신]에 대한 예의'를 강요하지만, 그들에게는 결정적으로 '인간[타인]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런 계급이 과연 무고한 이들에 대한 정의를 논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에 일단 회의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지만, <추격자>는 그 정반대의 여지도 남겨놓고 있습니다. 미진을 죽이는 대신 그의 딸 은지를 중호 옆에 붙여놓는 설정은 이래서 중요합니다. 오토바이 뺑소니를 당한 은지를 병원에 입원시키면서 중호는 자신에게 주어진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조금씩 자각하게 됩니다. '때리는 놈'인데다가 영민이 미진을 죽인 게 아니라 팔아먹었다고 철썩같이 믿는 중호가 그 수많은 때리는 놈들 가운데서 미진을 살리기 위해 유일하게 동분서주하는 인물이 되는 것을 납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제도적으로 '때리는 놈'을 만드는 시스템 바깥의 자유로운 개인에게 그래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법이잖아요? 고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감독의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추격자>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일단 '때리는 놈'이 됨으로써 계급상승을 이루는 거예요. 하지만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에 무감해지도록 만들고 타인에 대한 경멸을 그 마음 속에 심어놓습니다. 이 영화 속에선 나름 배운 것 많아 보이는 경찰의 정신감정가마저도 피의자 영민을 성불구로 몰아붙이며 그를 향해 기분나쁜 욕을 퍼붓고, 시종일관 알 수 없는 행동거지로 일관하던 영민은 이 장면에서 유일하게 통제력을 잃고 폭발하고 맙니다. 이 장면을 사이코패스에게 성이론을 갖다붙여 퀘스천 마크를 식상한 방식으로 해명하는 것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그보단 계급적 관계에 기반한 타인에 대한 폭력이 현실 속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보는 게 더 적합하지요. '미친 놈에 대한 분노'와 '무고한 놈에 대한 동정'을 아슬아슬하게 양 어깨에 떠받치며 진행되는 영화는 결국 병원에서 잠이 든 은지의 병실에서 중호가 창가를 내다보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영화가 '공분'보다는 '존중'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데, 한편으론 무언가 중요한 또다른 것이 비어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건 아마 '때리는 놈으로서의 반성'일텐데, <추격자>는 미친 놈과 때리는 놈 사이에서 멋진 대결을 보여주긴 했지만 가끔씩 이 덕목을 까먹고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격자>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빛나는 메시지가 '(경찰이든 살인마든 어딘가를 향한) 분노'보다는 '인간에 대한 존중' 쪽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이 '때리는 놈'의 계급에 속할 거라는 걸 염두한다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by lyh1999.
2008/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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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다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오래도록 고독하게 남아서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quoted from 라이너 M. 릴케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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