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불온식품
- 으하하하. 딴소리 하나. 김호정이 또 이래저래 가족들에게 쌓인 거 많은 아내 역을 연기합니다! <즐거운 인생>이 너무 남편 편을 드는 게 불만이었던 분들은 또다른 김호정의 출연작인 <모두들 괜찮아요?>란 작품을 찾아보시길. 이 영화는 <파랑주의보>에 이은 이순재의 최근 영화 출연작이기도 한데,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노쇠한 종이호랑이 이순재의 이미지는 이미 이 영화에서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봐도 좋을 정돕니다.

- 글을 수정하다가 인터넷 회선이 살짝 이상해지더니 포스팅 자체를 날려먹었습니다-_-. 포스팅 전체 갯수 카운팅도 멀쩡한데, 그냥 뿅 사라져버렸어요-_-;;;;;; 미리 복사해 뒀기에 망정이지;;;; 할 수 없이 새로 올려요.

- 이전에 썼던 <왕의 남자> 글(http://lyh1999.egloos.com/1188485)을 참고삼아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 맛보기로 간단히 몇 마디. 여러분은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이 정말 음악영화라고 생각하시나요? 전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 15% 정도만 동의해요. 이 영화가 음악에 대해 발언하고 싶은 건 오로지 80년대 대학가요제식 가요에 대한 향수 정도입니다. 거기다 굳이 덧붙이자면 무려 유앤미블루의 "방준석"이 음악감독을 하고 있다는 점 정도죠. 영화 속에서 <터질거야>가 하드코어, 펑키 스타일로 계속 변주되는 동안 영화가 음악 장르나 한국 음악사 같은 따위에 대한 어떤 시각을 드러내는 걸 저는 거의 보지 못했거든요. 슈프림스와 모타운의 흥망을 다룬 <드림걸스> 같은 영화에 비교해 보면 이 영화에 음악영화 딱지를 붙이긴 좀 민망해집니다. 이 영화는 음악영화라기보단 그냥 <왕의 남자> 같은 일종의 마당놀이극입니다. 자세한 얘기는 밑에서 적도록 하죠.





0.

"난 이 영화가 판타지가 아니라, 불온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니 꿈이 있어서 어떡하란 말이야. 먹고살아야 하는데 밴드를 하자니. 사실 이 영화는 굉장히 시비를 많이 걸고 있다고 생각한다."
- 정진영, 씨네21 인터뷰 기사 "유쾌한 네 남자의 무한도전" 중에서

"...... 불평인데요. 인생의 목표니 성취니 하는 게 환상이라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저 여흥삼아 자기를 속이며 살고 있는데 감독님은 그걸 꼭 들춰서 확인해주셔야 하는지. ^^; 영화를 보고 나니 “근데요, 감독님, 우리 그거 아는데요. 그냥 잊고 살려는 거거든요?” 이렇게 투정하고 싶더라고요."
- 김혜리, 씨네21 기사 "이창동 감독 정말 지독한 사람이죠!?" 중에서


1.

저는 이전에 <왕의 남자> 글에서 비판 이상의 발전적인 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풍자의 한계를 이야기했고, 글을 마무리하면서 말미에 "대중적인 코드를 맞추어 흥행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상업영화의 한계..."라는 구절을 덧붙여 두었습니다. 당시엔 100% 확신할 수는 없는 언급이었지만, 그 구절을 확인사살해주듯 이준익은 <라디오 스타>를 만들면서 그동안 다소 불분명했던 감독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드러냅니다. 그는 (1) 대중상업영화를 지향하는 감독이되, (2) 대중상업영화의 문법으로 자기 또래의 어른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감독이면서, (3) 동시에 20-30대 젊은이들로만 그득한 극장으로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감독입니다. 비슷하게 장년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우아한 세계>가 하지 못한 일을 이준익은 해내는 것입니다.

그가 현재 한국영화 지형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저 마지막 3번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이 점에 관해서 물론 문화적 다양성 어쩌고 저쩌고 식의 설명을 갖다붙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가 현재의 장년/중년층 사람들에게 끔찍할 정도로 문화적 마인드가 부재해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휘둘리면서 많은 중년들의 문화생활은 잘해야 TV 연속극 정도로 제한되어 버렸고, 이는 세대간의 엄청난 문화적 불균형을 초래했습니다. <라디오 스타>의 몰락한 가수 최곤의 모습이 바로 그 증거였고요. <즐거운 인생>의 주인공 세대인, 그보다 어린 386세대도 별 다를 바 없어보입니다. 예컨대 <한겨레>가 몇달 전 런칭한 신문 속 매거진 "ESC"의 주제는 빡빡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Escape), 즉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즐거운 인생> 차례가 됐습니다. 혹자는 <라디오 스타>와 이 영화가 "별 차이가 없다"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말은 동시에 "미세한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직업 가수를 다룬 <라디오 스타>에 비해, <즐거운 인생>은 그 대중을 직접 그 딴따라의 위치로 끌어들입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즐거운 인생>의 설득적인 면모를 강화시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준익 감독이 묘사하는 광대 이야기를 그냥 남얘기로 치부하고 보면 그만이었지만, 이쯤 되면 영화 스스로가 "너는 왜 이 사람들처럼 '즐거운 인생'을 살지 않느냐"고 우리에게 따져 묻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준익은 그 점을 잘 알고 있고, 영화 속에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처럼, (이런 부류의 영화에 으레 쏟아지는) "너무 판타지 같고 말이 안된다" 식의 불만이 제기될 것이란 점 역시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즐거운 인생>은 너무 영리해서 교활해 보일 정도로 그 공격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틈을 공격할 참입니다.) 실제로 저는 이 영화가 판타지 같다는 이유로 비판하기엔 너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정말로 있을 법한 일을 그럴 듯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체로 영화를 밝은 분위기로 진행하고 있지만 시종일관 비극의 그림자를 잊지 않고 깔아두고 있거든요.

영화 속에서 계속 치고 받고 하던 캐릭터들을 "라이브 조개구이"에 대충 쓸어놓고 활화산 밴드가 멋지게 공연을 하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되지만 그것으로 이 영화가 언급하는 중년의 위기가 해소됐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이혼선언을 들은 혁수(김상호)가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밴드 연습을 하지만 결국 아내 따라 캐나다 가겠다고 선언하는 걸 보세요. 음악은 결코 그들이 당면한 현실의 괴로움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영화가 끝나도 기영(정진영)의 아내(김호정)은 "위자료 줄 돈이 없어 이혼도 못하는" 기영의 처지를 계속 비웃을 것이고, 그 딸(고아성) 역시 하던대로 기영에게 적당히 무심할 겁니다. 혁수는 앞으로 이혼남으로서의 생활을 견뎌야 하며, 성욱에게 화가 난 아내가 다시 집에 돌아오리란 보장도 할 수 없습니다. 아마 줄거리가 더 진행되었다면 우리는 활화산 밴드가 정말로 해체되는 것을 보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므로 <즐거운 인생>은 더 험한 꼴을 보기 전에 더 이상의 전진을 멈춰버린 셈입니다.


2.

이런 파국의 기운은 이준익의 전작에서도 일관되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준익은 꾸준히 예술 혹은 놀이적 요소를 영화의 중심 소재로 다루어 왔고, 그 영화들은 한결같이 놀이를 뛰어듬으로써 위기에 처하는 예술가/딴따라/놀이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왕의 남자>에서 눈이 머는 형벌을 당하고도 기꺼이 연산군에게 대드는 장생이 그 대표적인 경우예요. <즐거운 인생>의 기영도 그렇습니다. 그는 성욱과 혁수에게 밴드를 하자고 졸라대면서 "밴드 안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떼를 쓰지만 진실을 말하라면 "밴드를 하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을 겁니다.

이준익 영화의 놀이꾼들은 자신의 업으로 삼은 놀이가 결국엔 어떤 식으로든 비극적 파국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비극은 일종의 숙명이기도 하고, 이준익 월드의 제1법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놀이꾼들은 그 놀이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탓에, 그 파국을 감수하며 무책임할 정도로 돌진하는 인물들입니다. 이준익 스스로가 영화 수입 사업을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수십 억의 빚을 짊어졌던 위인이니 이 인물들은 다분히 이준익 스스로의 자기반영성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을 일종의 마당놀이극처럼 다룬 <황산벌>과 <왕의 남자>는 그 숙명적인 비극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었습니다. 이준익이 이를 영화상에서 전달하는 방식은 이들의 비극성과 정반대되는 희극성, 상승과 추락의 기운을 번갈아 배치함으로써 줄거리가 진행될수록 보다 강력한 파국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준익의 영화들이란 '희(喜)'와 '비(悲)'의 요소를 조합한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사자성어처럼, 기쁜 일이 있으면 그 다음엔 반드시 슬픈 일이 벌어지고, 그 반대의 경우도 나타나는 겁니다.

예컨대 비극이었던 <황산벌>과 <왕의 남자>는 크게 [비-희-비]의 3단 구조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희극적 성향이 강한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은? 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존의 [비-희-비]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되, 막판에 영화상에서 당면한 갈등이 불러온 추락의 기운을 상승의 기운으로 급반전시킴으로써 마지막에 '희'를 하나 덧붙이는 [비-희-비-희]의 구조로 변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준익 월드에서 우리는 이 새옹지마의 법칙을 너무나도 잘 익혀온 까닭에, 굳이 "음악이 밥먹여주냐" 식의 악플을 달지 않아도, 이 '희' 다음엔 필연적으로 관성적으로 '비'가 나타날 것이란 예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즐거운 인생>에 대한 평단의 불만의 실체입니다. 이준익은 현실을 결코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놀이 바깥의 현실은 언제나 비루하고 비참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 의미의 희극은 결코 만들 수 없습니다.

이래선 <즐거운 인생>을 본 어느 누구도 그들처럼 활화산 밴드를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준익이 이 부분에 대비를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판타지의 혐의를 씌우기 가장 난감하게 만드는 부분은 이들 주인공들이 기존의 경쟁질서에 철저히 밀려나 있다는 설정입니다. 40대 남성이라면 으레 '빡세게' 돈벌어서 처자식 먹여살리며 아버지 노릇해야 할 시기이지만, 기영과 성욱은 실직상태에 있고, 대리운전과 택배 일을 하는 성욱에 비해 기영은 그나마 하는 일도 없습니다. 중고차 판매를 하고 있는 혁수 역시 아내에 의해 '아웃'당하고요. 그들이 밴드에 몰입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즐거운 인생>의 장점은 그 책임의 중압감을 무서울 정도로 부숴버리고 이를 '밴드질'이라는 놀이의 여흥으로 대체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활화산 밴드 멤버였던 상우가 죽고, 그 아들을 새로운 멤버로 영입한다는 줄거리를 듣고 당연히 유사부자끼리 서로 아웅다웅하는 내용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웬걸, 기영은 그냥 애예요. 현준에게 절대 권위적으로 들이대는 일이 없습니다. 대신 현준과 한편이 되어 "기타를 부숴버리면서" 권위를 세우려고 했던 아버지 상우를 죽여버려요. 그건 분명 가족과 사회 안에서 일말의 권위까지 낱낱이 해체당한 기영 같은 실업자만이 취할 수 있는 장점입니다. 듀나의 경우 이런 태도가 퇴행적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취합니다. 그건 맞는 분석이지만, 그런 퇴행은 지금의 40대 남성들에게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구멍이 없을까요? 저는 앞에서 이들이 밴드를 할 수 있는 건 이들이 딱히 변변한 돈벌이 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이 결론을 뒤집어 '역'에 해당하는 명제를 만들면 이렇게 됩니다. "돈벌이수단을 갖고 있는 이상 일반인들이 활화산 밴드를 만들 가능성은 없다." 이 순간 <즐거운 인생>이 응당 취해야 할 설득의 근거는 무너져버리게 되는데, 놀라지 마세요. 이건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준익 영화의 전반적인 기조와도 들어맞는 얘깁니다. 현실은 언제나 비참하고 비루합니다. 이준익 월드에서 "즐거운 인생"을 찾는 유일한 길은 놀이판에 끼어들어 잠시나마 위안을 찾는 것입니다. 그 놀이는 분명 자기 자신을 되찾는 자아 실현 행위입니다. 그러나 <우아한 세계>가 "지긋지긋한 밥벌이의 지긋지긋함"을 말하는 선에서 그쳤다면, 이준익은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보통 말하는 직업활동 속엔 그런 만족이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예컨대 성욱은 아내와의 말다툼 도중에 당신의 꿈을 찾아라,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지만 그 꿈은 돈벌이 영역의 바깥에 있습니다. <즐거운 인생>의 진짜 "깨는" 메시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옵니다. 지금의 불만족스런 상황에서 빠져나와서 꿈을 찾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 돈벌이를 그만둬야 하며, 그러지 않는 이상 당신이 원하는 행복은 결코 얻을 수 없을 거라는 겁니다. 여기서 다시 듀나가 뭐라고 하는지 보자면... 그는 활화산 밴드 역시 다분히 현실도피적 성격을 띠고 있다며 <즐거운 인생>의 줄거리를 끝없이 도망치기 행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나 이쯤되면 이건 도피는 도피이되 단순한 도피로 정의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듀나는 그 비판의 날을 마지막에 살짝 꺾습니다.)


3.

그러나 아직 말하지 않은 <즐거운 인생>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건 소위 이준익의 '놀이관(觀)'이 이 영화의 결함과 결합하면서 빚어내는 효과입니다. 저는 앞에서 이준익 영화가 '희'와 '비'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분석했는데, 비루하고 비참한 현실을 묘사할 때 이준익 영화는 '비'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오로지 놀이판의 일시적인 에너지에 기댐으로써 영화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상승하게 돼요. 그런데 그 놀이판이란 항상 어떤 특정한 놀이꾼과, 그 광대를 구경하는 관객들로 구성됩니다. 놀이꾼이 이끌면, 관객은 그냥 생각없이 박수쳐주고 환호해주고 따라가는 거예요. <황산벌>의 사투리 욕설 배틀이나 진짜 창칼이 난무하는 인간 장기, <왕의 남자>에 나오는 광대놀이, <라디오 스타>의 DJ 놀이나 <즐거운 인생>의 공연씬 모두 이런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요? 당연히 문제가 있죠. 여기서 관객이란 그저 관객으로 호명당하고 시키는 대로 호응하는 객체일 뿐입니다. <즐거운 인생>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 대비한듯 많은 부분에서 현실적인 묘사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말이 안 되는 부분은 공연씬에서 나타나는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공연을 흘끔 보고 지나가는 다른 뮤지션들의 반응을 보세요. "괜찮은데?" 정도도 아니고 "좋은데!"랍니다.) 이들이 얻는 인기엔 충분한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습니다. <라디오 스타>에서 최곤의 라디오 방송이 인기를 얻는 과정보다도 설득력이 떨어져요. <즐거운 인생>에 주로 나온 있는 비판은 이들 주인공이 그들의 아내를 '착취'하고 있다는 점이지만, 진짜 문제는 그들이 부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캐릭터 전체를 착취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나온 모든 등장인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쓸어모으는 마지막 공연장면을 상기해 보시길.

그 점을 미리 의식한 듯 영화는 세 사람이 나이트 클럽 오디션에서 물먹는 장면, '실력파' 현준의 퍼포먼스, 기생오라비 용모의 현준을 따라다니는 10대 여자애들 따위를 보여주긴 하지만 충분한 변명이 되진 않죠. 다만 그 가운데서 유독 돋보이는 건 연주를 무척이나 즐기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입니다. (특히 연주할 때마다 기저귀 찬 아기 표정으로 돌아가는 혁수 표정!) 이쯤 되면 그냥 "음악을 즐기면 성공하는 법"이라고 믿어야 할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마치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격언이 실현되는 걸 보는 것 같지요. 이 부분에서 영화는 중년 남성들에게 "당신이 무언가 미치도록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낸다면 사람들은 (예상과 달리)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물론 이 메시지는 그럴 듯해 보이긴 합니다만, 동시에 신빙성 떨어지는 믿음에 가까운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준익의 놀이관이란 거대 관객 집단을 전제로 하는 기존의 대중문화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합니다. 이준익 영화에서 스스로 즐기고 끝나는 '혼자놀기'란 그리 오래가지 못해요. 성공적인 놀이란 놀이를 즐겨주는 누군가가 전제되지 않고선 불가능하며, 그것이 이준익 영화의 놀이꾼들이 주변 등장인물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대중적 흥행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준익이 만들어 내놓는 '영화'라는 놀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라디오 스타>에 내재된 문제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즐거운 인생>에서 문제는 이런 조작된 환호와 예정된 인기 수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런 조건들 하에서 영화가 (포스터 문구처럼) "너도 개겨라!/저질러라!/맞서라!"라고 극장 속 관객에게 명령할 때, 이 구호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을 모조리 공연 관객이라는 객체로 소환하는 줄거리와 완벽히 충돌해 버립니다.

영화 <즐거운 인생>을 보는 관객은 여기서 자신이 활화산 밴드에 감정을 이입해야 할지, 공연 관객 속으로 감정을 이입해야 할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준익의 놀이관에서 한 가지 포인트를 더 주목해야 하는데, 앞에서 우리는 놀이가 비참한 현실의 대척점에 있으며, 놀이가 그 비참함을 결코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놀이란? 활화산 밴드처럼 놀이 자체에 미치지 않는 이상 그저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한 도구 이상의 의미를 얻기 어려워집니다. 심각한 의미부여 따윈 필요없는, 잠시 즐기고 나면 그만인, 정반합(正反合) 과정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반(反)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 것. 이것은 무척 비관적인 결론이지만, 동시에 일반 대중이 영화라는 놀이에 주로 취하는 아주 보편적인 태도이기도 합니다.

한때 제작자 경험을 갖고 있는 이준익은 대중의 생리를 잘 알고 있고, 때문에 대중의 이러한 태도 역시 모를 리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객체로서의 대중을 동시에 주체로서 호명하려 드는 <즐거운 인생>의 혼란스런 모순을 그는 그대로 내버려둡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깊이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고 또 그럴 능력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낸다거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의지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대중은 이래라저래라 주제넘는 설교 듣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이는 영화 스스로 겸손한 자세를 취하도록 현명하게 포지셔닝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래야만 일반 대중의 안정적인 호응을 기반으로 한 <즐거운 인생>이란 놀이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이런 태도는 주로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개그맨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한 몸 망가져 여러분께 큰 웃음 선사할 수 있다면, 팍팍한 일상에 한 줄기 청량제가 될 수 있다면..." 그 태도 자체는 겸손한 것이지만 그와 함께 코미디의 가치, 웃음의 가치는 일시적인 현실 위안으로 추락해 버립니다. 그런 함정에 제대로 빠진 케이스가 바로 심형래입니다. 그는 재능있는 원로급 슬랩스틱 코미디언이지만, 스스로 코미디언/코미디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가혹하게 깎아내리고선 그 피해의식 속으로 적당히 도피해 버립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그 무시무시한 '충무로 디까 음모론'인 셈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인터뷰 기사에서 중년 남성들의 피해의식이나 메이저/마이너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감추지 않는 이준익의 발언에서도 그런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4.

그러므로 <즐거운 인생>은 "당신은 지금까지 객체 같이, 남들이 요구하는 기대에 맞춰서만 살아왔지만, 동시에 주체가 되고 싶은 욕망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선에서 멈춰버립니다. 그리고 그 뒤엔 "어차피 현실이란 힘든 거고 그 부분까진 책임질 수 없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말이 감춰져 있습니다. 거기에 사족을 더 단다면 "나는 그냥 미친 척하고 놀이판에 끼어들지만 당신도 그럴 수 있을까" 정도?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방금까지 비판적인 어조를 유지해 왔지만, 현 상황에서 이런 태도가 반드시 나쁘기만 하다곤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글을 시작하면서 이준익이 중장년층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에 대해 언급했는데, 시종일관 일에 시달리며 TV 드라마 시청 정도를 빼면 문화생활이란 것 자체가 거의 결여된 관객들에겐 이 정도 강도의 메시지만으로도 충분한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준익이 정말 야심을 갖고 좋은 '대중상업영화'를 만드는 좋은 감독이 되길 원한다면, 앞으로 <즐거운 인생> 같은 영화는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 영화는 이준익으로 하여금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게 만듭니다. <즐거운 인생>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 파격적이고 불온하며, 동시에 진심을 담고 있고, 주목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의 파급력은 어디까지나 영화를 2시간짜리 킬링타임용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관객들에게나 의미가 있습니다. 한번 보고, "즐기고", 잊어버리면 그만인 겁니다. (저는 그것이 이준익 감독이 말하는 "즐거운" 인생의 실체가 아니길 바랍니다.) 실제로 이 영화를 호평하는 관객들의 반응은 주로 활화산 밴드의 공연을 통해 신나게 "대리만족"을 했다는 반응, 아니면 "나도 내 꿈을 찾고 싶다" 수준의 막연한 감상적 반응에서 그쳐버립니다.

반대로 영화나 음악 같은 예술이 자기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불쾌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준익은 영화에서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놀이/예술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지만 그것이 현실과 충돌하면서 갖는 가치는 이상할 정도로 깎아내립니다. (<왕의 남자>의 풍자에 비웃음과 비판 이상의 대안적인 힘이 없었던 점을 상기해 보시길!) 그러니 이준익은 여기저기 언론 지상에서 그 괴리에 대해 변명하게 되고 사족을 달게 되는 건데,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감독이 그들을 진심으로 설득할 의지 없이 메시지만 불온하면 그건 (정말 이런 비난을 하고 싶진 않지만) 쿨한 연기, 꼰대짓밖에 더 되지 않습니다. 그건 영화의 기본적인 질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왕의 남자> 글에서 언급한 '대중상업영화감독 이준익'이 부닥친 한계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저는 <즐거운 인생>이 일종의 불량식품 같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즐거운 영화>는 자기 메시지를 확실히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고, 관객과의 기본적인 소통에는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지 않다"는 뜻의 "불량"을 그대로 쓰는 건 온당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엔 정진영의 수사를 빌어 "불온식품" 정도의 표현이 적당할 겁니다. 저는 이 영화의 불온함을 좋아하지만,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준익에게 필요한 것은 (1) 소통을 넘어서는 설득, (2) 관객을 2시간짜리 손님으로 지나치치 않는 진심 이상의 의지, 그리고 (3) 현실에 대한 세련된 냉소를 넘어서는 긍정적인 그 무엇입니다. '그 무엇'의 정체는 놀이가 아닐 수도 있지만, 놀이라면 더 좋을 수도 있을 겁니다.



P.S. 이것은 영화 이야기와는 거리가 좀 멀기 때문에 사족으로 적는 것인데... 최근 들은 수업에서 강사 선생님이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다가 하신 인상적인 말씀이 있었어요. "인간이 자신의 모든 선함과 악함, 장과 단, 강과 약을 남김없이 드러낸 다음에 오는 건 뭘까. 그건 죽음밖에 없지 않을까." <씨네21>과 <필름2.0>에 실린 이준익의 인터뷰를 보다가 그 말이 떠올랐어요. 그는 철이 아직 안들었다는 말마따나 자신의 모순된 내면과 장과 단, 강과 약을 은근슬쩍 모두 폭로해 버리고 있는 듯해 보였습니다. 위에서도 '꼰대짓'이란 표현을 썼지만, 그 과감한 폭로를 적당히 쿨한 태도로 애써 포장하고 있는 듯해요. 개인적으로 전 그 부분에 대해선 뭐라 딱히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솔직한 태도는 좋은 겁니다. 다만 그런 다음에 이준익은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요? <왕의 남자>의 장생처럼 죽음으로의 투신? 뭐 그것도 백보쯤 물러나서 예술적인 자기파괴적 본능이라고 쳐봅시다. 하지만... 도대체 왜?



2007/10/04
by lyh1999.
by lyh1999 | 2007/10/06 01:32 | The Works | 트랙백 | 핑백(3)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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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프고 불쾌하고 불쌍하다. 그러므로 내가 이 곡에 표하는 호의란 어디까지나 guilty pleasure이다. &lt;즐거운 인생&gt; 글(http://lyh1999.egloos.com/3830348)에서 썼던 것처럼 불온함 이상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불온하기만 해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저 어디 한 군데 자기 감정 하나 속시원 ... more

Linked at There is a lyh19.. at 2008/08/17 14:34

... 국영화 씬에서 &lt;우생순&gt;과 가장 비슷한 카테고리 안에 위치시킬 수 있는 영화가 뭐겠습니까? 저는 이준익 감독의 &lt;즐거운 인생&gt;이라고 생각합니다.(참조: 즐거운 인생: 불온식품)&lt;즐거운 인생&gt;은 뒤늦게 광대놀이에 빠져든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lt;우생순&gt;과 함께 현재 한국의 장년층들이 빠져 ... more

Linked at Desperatelyh1999.. at 2009/05/10 12:15

... nbsp;또 다른 비극으로 덫을 파놓고 등장인물들에게 이것도 견뎌내 보라고 압박을 가하는 겁니다. 인생사 새옹지마!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예전에 썼던 &lt;즐거운 인생&gt; 포스팅을 참조하시길.) 혹자는 이를 두고 드라마 &lt;대장금&gt;이나 &lt;허준&gt;에서 선보였던 RPG 게임식 구성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 more

Commented by 아이 at 2007/10/06 01:55
그래도 꿈 꿀 수 있어서 즐거워요^^
Commented by lyh1999 at 2007/10/06 10:33
아이/ 꿈을 꾸는 것 자체는 즐겁지만
실현할 수 없는 꿈이나 실현시킬 마음이 없는 꿈을 꾸게 되면
행복 끝 지옥 시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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