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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3때 멋도 모르고 읽은 책을 친구 녀석의 부탁으로 다시 펼쳤습니다. 3년 전과는 확실히 많은 게 달라졌어요. 그걸 두고 다른 친구는 "외로움과 고독은 다른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 나중에 한번 시간 잡아서 <고양이를 부탁해>를 다시 볼까봐요. 4년 전과는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런지. - 언젠가부터 머리가 마구 지끈거려요. 아프지 않은데 아파옵니다. 온몸에 풍이라도 온 것처럼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한 번 쯤은 해 보았을 겁니다. 가만히 있다가도 순간 뇌리를 스치는 어떤 잔상, 그 잔상이 머릿속을 송곳처럼 예리하게 후벼놓고, 한구석에 애써 묻어놓았던 이야기를 순식간에 풀어헤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서 그 아픔에 어떤 다른 것도 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게 돼요. 그리고 그 아픔이 바로 기억에 대한 눈물이자,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인 셈입니다. 서른일곱 살의 와타나베를 비행기 안에서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원제이기도 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이었어요. 와타나베를 괴롭히는 잔상은 마치 영화 <장화, 홍련>의 유령처럼 그를 따라다니고, 상실의 아픔은 그렇게 찰나에 찾아왔다 한참을 머무릅니다. 와타나베가 듣는 "노르웨이의 숲"이 이렇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잔뜩 머금은 것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풀어놓는 와타나베의 과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학생 와타나베의 열여덟 살은 마치 "과거"라는 이름의 거대한 퍼즐에서 빠진 부분을 메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피터팬 콤플렉스에 빠진 아이를 보는 것만 같아요. 열일곱 살에 자살해 버린 친구 기즈키와 요양원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버린 나오코의 기억을 껴안고 살아가는 와타나베는 그를 둘러싼 현재의 것들에 심히 무관심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냉소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마 그런 모습이 많은 젊은이들에겐 쿨하고 낭만적인 삶의 자세인 것처럼 보이는 걸지도 몰라요.) 그의 관심은 온통 상실한 과거의 것들을 다시 보상받고 복원하는 데에만 쏠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기즈키 너는 여전히 열일곱인데 난 멋도 모르고 스무 살이 되어 버렸다"며 푸념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엔 그런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납니다. 이런 과거지향적 인간 와타나베가 상실한 과거를 상징하는 나오코와 그의 현재를 상징하는 미도리 사이에서 방황하게 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특히 그런 관계가 연애소설의 삼각관계, 특히 (작가 스스로 포르노그래피에 가까울 정도라고 고백했을 정도로) 노골적인 묘사로 채워진 섹스를 통해 나타난다는 건 아주 흥미로워요. 와타나베는 그와 같은 상처를 공유한 나오코와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만 나오코는 바로 그 "닿은" 순간 멀리멀리 사라져 버리고, (와타나베가 "과거형 인간"이 아닌 "과거지향적 인간"인 까닭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 나오코를 바라보는 와타나베는 나오코와는 판이한 성격의 미도리와 차마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결국 와타나베는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와 과거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한 경계인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어쨌든, 무참히도 시간은 바로 지금 와타나베의 옆을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가 어제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 둘 채워 넣으려 애쓰고 있을 때, 그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오늘은 또 다른 어떤 것들을 하나 둘 잃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이 오늘은 와타나베가 다시 부랴부랴 채워넣어야 할 과거가 되는- 일종의 악순환인 겁니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의 요양원 동료였던 레이코가 연주하는 비틀즈 노래를 듣고, 그녀와 섹스를 나누며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도리에게 전화를 거는 경계인 와타나베, 혼자 남은 와타나베는 지금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소설에서 의도했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상실의 아픔"은 궁극적으로 맨 앞에 등장한 서른일곱 살의 와타나베로 회귀하면서 식어버린 애정, 멀어진 사람들, 퇴색된 기억, 그리고 더 나아가 잡을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됩니다. 미처 맞이할 준비조차 되지 않은 시간들임을 깨달은 순간 우리는 벌써 그 시간들을 떠나보내고 있어요. "스무 살이 될 준비 같은 거, 전혀 안 돼 있었어. 어쩐지 누군가에 의해 뒤에서 무리하게 떠밀려 온 것만 같다니까"라고 투덜대는 나오코의 모습에서 와타나베와 우리는 그 상실이 가져다준 아픔의 핵(核)과 마주칠 수 있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저는 개인적으로 "노르웨이의 숲"이란 원제가 더 맘에 들지만, "상실의 시대"라는 한국어판 제목이 독자에게 발휘하는 힘이 훨씬 강력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인 거죠. 어쨌든, 그렇게 사람들은 나이를 먹고 늙어갑니다. 어떤 '잔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주기를 기다리면서 말이에요. 와타나베가 비행기에서 들은 "노르웨이의 숲"처럼 말이죠. 첨언: 다만 다른 사람들도 와타나베나 저처럼 과거의 상처를 메우느라 정신없이 매달리며 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주변엔 온통 몇 년 후엔 유학가고 취직하고 몇 달 뒤엔 군대 가고 몇 시간 뒤엔 식사하고 따위의 미래 계획을 장황하게 늘어놓느라 정신없는 사람들 투성이인 것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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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다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오래도록 고독하게 남아서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quoted from 라이너 M. 릴케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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