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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과거를 바라보는 척 현재를 비웃다

- 전체적으로 웰메이드 영화이긴 한데, 장생과 공길을 연기한 감우성과 이준기의 연기는 뭔가 좀 뒷맛이 안 좋습니다. 그들은 그냥 광대입니다. 궁중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뛰어난 지략을 소유한 것도 아닌데 시종일관 지나치게 심각하단 말이에요. 물론 조선시대 광대가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요.

- 장생과 공길에 비하면 육갑 역의 유해진은 드디어 10여년 가까운 조연 생활 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장생과 공길의 광대놀음은 너무 진지해서 흥이 안나는데, 육갑은 스크린에 나오는 매 순간순간이 진정 폭소입니다. 육갑에 비하면 장생과 공길은 광대십(ship)에 열중하는 매너리즘에 빠진 광대 같습니다.

- 처음엔 <왕의 남자> 리뷰를 의도했는데 쓰다보니 생각보다 <황산벌>에 대한 이야기도 꽤 섞이게 됐습니다.

- 이번 글을 쓰면서 도움을 받은 책은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입니다. 골치아픈 정치학 이야기이긴 한데, 최장집이 주장하는 제왕적 대통령 이론에 대한 비판은 <왕의 남자>와 꽤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언제나 그렇듯이, 스포일러 범벅입니다.






0.

"...... 하루는 황제가 나에게 그들 나라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오락들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 나는 특히 지상으로부터 12인치 (약 30센티미터) 높에 설치한 2피트 (약 60센티미터) 길이의 흰색 줄 위에서 하는 줄타기 놀이가 가장 재미있었다. ...... 이 오락은 오직 공위 공직자나 왕실의 총애를 얻고자 하는 지원자들만이 할 수 있었다. ...... 전임자의 사망이나 기타 불미스러운 사건에 의하여 어떤 공직 자리가 비게 되면 대여섯 명의 지원자들이 황제와 신료들 앞에서 자신들의 줄타기 솜씨를 과시하게 해달라고 청원을 드린다. 그러면 줄타기를 시행하여 떨어지지 않고 가장 높은 높이까지 점프를 하는 사람이 그 자리를 승계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종종 주요 대신들에게는 줄타기 기술을 시범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아직 그들의 솜씨가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황제에게 확신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 이런 오락들은 종종 치명적인 사고를 동반했으며 그에 관한 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또 나 자신이 두세 명의 지원자들이 팔, 다리를 부러뜨리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 스스로의 기량을 과시하고 동료들의 기량을 뛰어넘어 보려고 경쟁을 벌이다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한 번이라도 추락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들 중 한 명도 없었다. ......"

(<걸리버 여행기>, Jonathan Swift 지음, 류경희 옮김, 2003, 미래사, pp.60~62)



1.

<왕의 남자>는 겉으론 사극의 얼개를 띠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역사 재현물로서의 사극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장금>처럼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섞은 팩션(faction)이라는 분류에도 마음이 동하지는 않아요. 그건 사극이나 팩션이라면 으레 요구되는 역사에 대한 시각의 독창성이 거의 증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선 그다지 주목할 만한 역사적 "해석"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연산군 시대는 연산군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퇴행성 광인으로 그리는 기존의 해석에서 이렇다할 전복적인 변화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차별점이 있다면 광대가 궁중 안에서 놀음을 하며 왕과 천인이 대면하는 아이디어와 동성애 코드가 강조되었다는 건데, 전자의 경우 어디까지나 사료에 등장하는 문구 한 줄을 가지고 만들어낸 상상의 영역에 속하며, 광대와 왕의 대면은 연산군 시대의 역사를 변주하는 하나의 방법론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동성애적 코드는 <대장금>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제기되었고, <너는 내 운명>의 에이즈와 성 모럴이라는 소재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처럼 관객들은 이토록 센 동성애 코드를 너무나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이나 <청연> 같은 논쟁의 가능성도 거의 없고요. 어차피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이자 속칭 "구라"인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식으로 받아들여질 뿐이지요. 독특한 사관 운운하는 <왕의 남자>에 대한 지금의 평가는 어느 정도 재고될 필요가 있습니다.

시작부터 <왕의 남자>가 가진 사극으로서의 한계를 열심히 늘어놓았습니다만, 이건 영화 자체엔 크게 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영화의 홍보문구를 장식하는 이준익 감독 특유의 "퓨전 사극"이란 신종 장르의 장점으로 작용하기까지 해요. 전작 <황산벌>과 함께 <왕의 남자>는 "사극"이나 "팩션"보다 "퓨전 사극"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이준익 감독은 기존의 사극 문법에 지극히 현대적인 관점과 요소를 (삐리리 뿅) 퓨전~합니다. 두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심각하게 침범하지 않는, 즉 "말이 되는" 수준에서 현재 시점에서 부풀릴 수 있는 상상력을 역사적 팩트와 충돌시키며, 그래서 리얼하고 정직한 묘사가 우선시되는 기존의 역사극의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합니다. 그러나 미리 결론부터 풀어놓자면, 이 두 영화의 진짜 재미는 이 "위반"의 쾌감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2.

과거 역사의 팩트를 해석하는 대신 이준익 감독이 퓨전 사극에서 소환해내는 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정치의 풍속화입니다. <황산벌>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지요. 삼국시대의 나당 연합군과 백제군의 전투를 다루고 있지만, 그 디테일의 상당부분은 생명력 짧은 슬랩스틱 코미디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이를 걷어내자 보이는 것은 현재 한국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에 대한 은유입니다. <황산벌>은 사투리를 쓰는 신라와 백제의 갈등을 영화적 재미의 핵심으로 내세우지만, 이는 호남과 경상(혹은 비호남)으로 분리된 지역감정의 양상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자, 남북한의 통일 아젠다를 고대 삼국통일의 틀에 그대로 갖다 씌운 것입니다. 당나라 대신을 호통치는 고구려의 연개소문 장수의 설정이나 당나라로 상징되는 "외세"에 분노하는 신라인들의 정서는 현재의 반미 정서와 그대로 일치하고요.

이런 비교가 정당한 걸까요?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지 않아도 금방 오류가 드러납니다. 백제에 호남 사투리와 신라에 경상 사투리를 그대로 갖다씌우는 것부터가 언어의 가역성 자체를 무시한 처사입니다. 고대 삼국의 사람들이 서로 한 공동체[민족]으로서 연대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 역시 감상적 민족주의의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중화주의에 대한 저항의식으로서의 연대는 있을 수 있겠지만, 영화는 국사 교과서로 굳어진 현재 관객들의 착각을 굳이 교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 착각은 영화에게는 오히려 흥행 포인트로 작용하는 부분입니다.) 피붙이 아들을 전쟁의 볼모로 갖다바치고 자기 가족을 몰살시키는 장군들의 역겨운 모습이 다뤄지기도 하지만 이건 전쟁의 폭력과 (바다 건너 일본에서나 있다고 여겨지는) 군국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반감을 반영하는 수준에서 그칩니다.

그렇다면 <왕의 남자>는 어떤가요. 광대라는 밑바닥 신분과 왕이라는 꼭대기 신분을 부딪히면서 영화가 현재로부터 소환해 오는 것은 한국의 정치풍자 코미디입니다. 이러한 핵심 플롯은 청와대의 국무회의 자리에서 라디오 방송중이던 배칠수 최양락을 불러다놓고 시사코미디를 시키는 광경을 조선시대로 옮겨와 연산군과 장생, 공길 같은 다른 캐릭터로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이 비유는 고대 삼국과 당나라의 관계에서 억지로 현재의 통일 담론과 외교 패러다임을 끌어내려던 <황산벌>보다 최소한 말은 됩니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 시스템과 전근대의 전제왕조를 그대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문제제기가 있을 법 하지만, 그건 불만이 너무 많은 거겠죠.

실제로 <왕의 남자>는 과거와 현재의 두 정치 시스템 사이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을 꽤 잘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연산군은 개국공신들에게 둘러싸여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그려지는데, 이는 사사건건 트집잡고 딴지 걸고 심지어 탄핵까지 서슴지 않는 (야당) 의원들로 인해 허약해진 대통령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는 가운데 조정 대신들의 눈에 연산군은 어지간히도 자기 말 안 듣는 폭군으로 받아들여지고, 현대의 대통령 역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공격당합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인들은 일반 백성/국민들의 요구와 사회 갈등의 아젠다를 반영하기보다는 매관매직과 권력쟁투를 일삼는 한심한 위인들이기도 해요. 광대들의 풍자 역시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3.

장생 패거리가 펼치는 광대놀음은 일단 어느 정도 정당성을 확보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왕과 중신들은 여자놀음 권력놀음 같은 엉뚱한 데 한눈 팔지 말고 나라 다스리는 일이나 잘 하라는 건데, 이건 물론 옳은 얘깁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원칙론 이상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광대와 같은 백성/국민들의 시선은 거대 관료조직의 숲의 바깥에서 비롯된 것이고, 숲 내부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그들의 비판은 구체적인 문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의도도 없고요. 실제로 장생과 공길이 아무리 심각한 표정으로 일관할지라도 광대들에겐 그 표정에 걸맞는 정치적 의식이 없습니다. "왕을 가지고 놀면 왕이 웃었으니 중신들을 갖고 놀면 중신들이 웃겠지"라고 말하는 육갑의 수준과 대동소이합니다. 그들의 풍자가 구체적인 컨텍스트를 갖추게 된 것도 패왕별희 경극처럼 그들을 궁으로 끌어들인 내관(장항선)이 던져준 미끼 덕분이었고요. 이는 한국 근현대 1980년대의 민주화란 것이 어디까지나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데 그칠 뿐 엘리트 중심 정치판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는 사실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이 풍자는 한 번 궁 안에 들어오자 중신들과 후궁들, 심지어 대비마마까지 찍어내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됩니다. 이 뒤에는 디씨인사이드에 상주하는 폐인들이 생산해내는 패러디물과 어느 공장 직공이 별 생각 없이 올린 '살생부'가 정치권에서는 거대 음모론으로 둔갑하는 "참여 민주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게다가 대통령을 닮은 연예인은 TV 출연 자체가 불가능했던 과거 독재자들과 달리 요즘의 대통령들은 그들의 성대모사를 "개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도 지적해야 겠죠. 더 나아가, 왕과 중신들이 광대들의 풍자를 직접 눈앞에서 마주친다는 설정 자체가 이런 현재의 정치적 환경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남자>가 다루는 연산군 시대는 어떤 면에서는 적절한 선택입니다. 연산군은 광대들의 놀음을 보고 웃는 것으로도 모자라 잠자리에서 그 짓을 똑같이 따라하고 급기야 놀음 안에 직접 끼어들기까지 하는 인물입니다.

궁극적으로 <왕의 남자>가 2006년 현재로부터 과거 연산군 시대로 소환했다가 현재의 관객들에게 되쏘는 건 점점 공허해지는 "참여"의 문제입니다. 참여는 대통령까지 네티즌의 손으로 만드는 힘을 과시하지만 정작 실제적인 사회 갈등과 문제들을 정치권에 반영하고 해결하는 데는 별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악플은 인류 멸망의 징조"라는 듀나의 한 마디처럼, 여기저기서 말과 담론은 넘쳐나지만 실제 행동과 긍정적인 결과로는 이어지지 못하지요. 오히려 시민단체가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악의 축"으로 낙인찍히기까지 합니다. 그 가운데 힘을 얻는 건 "포퓰리즘(populism)"이란 비판입니다. 이 단어는 대통령을 공격하는 세력들이 한때 자주 써먹었던 것이지만, 대중의 "말"에 의해 방송사 하나가 작살나고 "댓글 정치"나 "키보드 민족주의" 같은 용어까지 등장하는 지금, 정치가 의도하지 않게 대중의 여론에 경도되는 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게다가 이는 기본적으로 "문제제기"와 "비판", "비웃기"에서 그칠 뿐 이를 넘어서기 어려운 풍자의 한 특성을 명확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진짜 "참여"가 부재하는 이 광경은 장생-공길-연산군의 갈등 관계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영화의 핵심을 차지하는 이 갈등은 "참여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로 압축됩니다. 장생과 공길은 애당초 놀음에나 관심 있지 실제 정치판에 끼어드는 건 관심 없는, 지극히 평범한 백성 중 하나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들에게서 풍자 이상의 정치의식을 기대할 수는 없죠. 오히려 그들은 왕을 가지고 놀면서도 임금의 절대권력을 절대 의심하지 않는 권위주의적인 면도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도저도 안되면 결국 신문고 두드리듯 대통령에게 읍소하는 현대 한국인에게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연산군은 공길에게 종4품 벼슬까지 내리며 공길을 끌어당기지만, 장생은 적당히 때를 봐서 궁 밖을 나가면 그만입니다. 공길에게 매혹된 연산군의 행동은 겉보기엔 광대들의 놀음 몇 판에 이끌리는 포퓰리즘으로 치닫지만 이는 내관과 장녹수 같이 이면에 개입한 제3의 정치 세력에 의해 조종되는 권력쟁투이기도 합니다. 진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이 "제3의 정치 세력"이 숨기고 있는 음모를 드러내고 물리쳐야 한다는 거죠.

더 나아가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은, 장생-공길-연산군 모두가 파국을 맞는 비극이 과연 광고카피처럼 장생과 연산군, 장녹수 사이에 난무하는 질투 때문이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 비극은 오히려 궁을 나가서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만, 동시에 연산군을 동정하는, 그러면서도 겉으론 포커 페이스로 일관하는 공길의 우유부단함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요? 그러나 이는 근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대다수 소시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왕의 남자>에서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비판할 능력도 있지만 해결을 위해 나서기를 주저하는 소시민들의 단면은 재밌게도 이들이 혐오하는 소수자[동성애자]의 표정에서 드러났습니다.


4.

앞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제니퍼의 유행어를 살짝 빌려오기도 했습니다만, 실제로 이준익 감독의 퓨전 사극은 "제니퍼 맘대로" 자행하는 연예인 얼굴 합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과거의 팩트와 현재의 상상력을 유전자 조합하듯 서로 잘라 붙여놓은 <황산벌>과 <왕의 남자>는 일단 보면 우스꽝스럽지만, 두 조각의 연결은 다르게 보면 무척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이렇게 이준익 감독은 과거의 팩트에 현재의 상상력을 덧붙임으로써 역사를 일종의 판타지 장르처럼 다룹니다. 스토리와 내러티브가 점점 비현실적이고 신화적인 것이 되어갈수록 작품이 의도하는 상징과 메시지는 확연해지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요소가 점점 허구적인 것으로 돌변할수록, 그 속에 이어진 현대적인 요소는 더욱 강렬해집니다.

그래서 두 영화는 겉으로는 과거의 일을 바라보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바로 지금의 일을 풍자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역사는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결국 바로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노골적인 자기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솔직함은 역으로 관객의 착각을 부풀리는 효과를 내기도 해요. 앞에서 지적한 <황산벌>의 오류가 바로 그런 역효과의 일종입니다. <왕의 남자>에서 그 오류는 상당부분 줄어들었고, 과거와 현재를 퓨전하는 감독의 솜씨 역시 진일보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역사를 문학적 재미로 응용하는 재치는 있어도 새로운 해석과 논쟁을 위해 과거 속으로 과감히 잠수하는 치열함은 그다지 보이지 않습니다. 전자가 퓨전 사극의 빛이라면, 후자는 그림자인 셈입니다. 이준익의 퓨전 사극이 이후 어떻게 변모할 것인지 기대되는 건 바로 이 빛과 그림자의 절묘한 조합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조합은 한편으로 감독의 말처럼 대중적인 코드를 맞추어 흥행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상업영화의 한계로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2005/01/07
by lyh1999.

by lyh1999 | 2006/01/07 15:02 | The Works | 트랙백(1) | 핑백(2)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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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왕의 남자> 왕이 아닌, 연산을 위한 영화.
[#IMAGE|c0010232_2412024.jpg|200601/14/32/|mid|500|717|pds2#] 왕의 남자: 과거를 바라보는 척 현재를 비웃다 (lyh1999님의 글. 언제나 그러시듯이 너무 잘 쓰셨다. 한번 꼭 봐보시길!) <왕의 남자>를 보고 왔습니다. 괜찮네요. 감상 들어갑니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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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냥 사라져버렸어요-_-;;;;;; 미리 복사해 뒀기에 망정이지;;;; 할 수 없이 새로 올려요.- 이전에 썼던 &lt;왕의 남자&gt; 글(http://lyh1999.egloos.com/1188485)을 참고삼아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맛보기로 간단히 몇 마디. 여러분은 &lt;라디오 스타&gt;와 &lt;즐거운 인생&gt;이 정말 ... more

Commented by 시리우스 at 2006/01/07 20:48
제 블로그로 글 퍼갔습니다. 원하지 않으신다면 다시 삭제할께요~ ^^
Commented by lyh1999 at 2006/01/08 03:37
시리우스/ 출처와 글쓴이 표기만 제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
Commented by dcdc at 2006/01/14 02:38
트랙백 신고합니다 :)
Commented by 나르사스 at 2006/01/14 16:11
너무 잘 쓰셨군요.
저도 한번 써볼까 하다가 저정도로 잘 나올것 같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전 간단하게만 정리했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카스미 at 2006/01/20 22:43
좋은 글 고맙습니다.
제 페이지에 추천글로 올려두었습니다. (생긋)
Commented by lyh1999 at 2006/01/21 01:16
카스미/ 저야말로 영광인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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