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17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Watch, and Learn.
- 공교로운 타이밍으로 올림픽 특집 포스팅이 되었습니다. (절대 의도한 건 아닙니다!)
- 포스터에 나온 배우들 사진이 아이돌 그룹 같다고 느낀 건 저뿐일까요......???

전반전. '세계 최초의 핸드볼 영화'라는 자체 타이틀을 앞세우고 보면 이 영화는 어디서도 듣도 보지도 못한 어떤 독특한 별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2004년에도 그랬듯이) 핸드볼이란 스포츠를 잘 모를 뿐더러 그리 큰 관심도 없습니다. (이제와서 까칠한 말이지만 지금의 우생순 열풍의 상당부분이 냄비근성에 기댄 가식이라고 생각하는 건 저뿐일까요?) 더구나 이 영화는 여성 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핸드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는 핸드볼 시합보다는 그 이전의 훈련 과정에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다가, 핸드볼 경기 장면이 실제 경기보다 감흥이 덜하다는 반응은 이미 여기저기서 나온 바 있습니다.
후반전. 이 지점에서 스포츠 영화 <우생순>을 "패스"해버린 사람들은 여성영화 <우생순>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시 하지만. <우생순>이 예찬하는 여성성(혹은 "아줌마의 힘")은 관객이 예상할만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조율되어 있습니다. (황진미의 말을 빌어) "끈질기고 관계 지향적이며 약자를 보듬는 아줌마성"을 이 영화에서 찾아낸 여성성의 미덕이라고 칭찬한다면 그건 우리가 이전부터 여러 차례 들어온 예찬의 반복입니다. 게다가 좀 편협한 소리이기도 해요.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혹자는 미련하고 바보같다고 코웃음칠) 사람들은 남자들 중에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사견을 전제하고 말한다면 요즘 남성성/여성성을 논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까먹고 넘어가는 것 같아요. 여성성/남성성을 지나치게 각 신체적 성의 고유한 특질로 몰아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 그러니까 문제는 <우생순>은 좋은 영화 같은데 <우생순> 자체만 놓고 보면 지나치게 무난하게 좋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줄거리나 연출은 대중영화의 틀 안에서 크게 모나지 않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서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무엇이 어떻게 좋다고 말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연장전. 이 시점에서 제가 제안하고자 하는 방법론은 타임머신을 뒤로 돌려 비교대상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영화 씬에서 <우생순>과 가장 비슷한 카테고리 안에 위치시킬 수 있는 영화가 뭐겠습니까? 저는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조: 즐거운 인생: 불온식품)
<즐거운 인생>은 뒤늦게 광대놀이에 빠져든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생순>과 함께 현재 한국의 장년층들이 빠져든 삶의 고통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짝을 지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즐거운 인생>의 아저씨들은 돈벌이도 안 되고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하게 되자 그 탈출구로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하고, <우생순>에서 세계 수준의 기량을 자랑하는 아줌마 선수들은 빚에 쫓기고 이혼경력 때문에 손가락질 당하고 약물복용으로 불임이 되면서도 핸드볼 팀으로 기어들어옵니다. 방금 쓴 문장에서 혹자는 이미 두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차이는 "되자"와 "당하면서도"의 차이입니다. 고통 앞에서 아저씨들이 허무주의적 유희로의 도피를 택한다면, 아줌마들은 그 고통을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태도는 결국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굳이 어느 한 편에 손을 들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주목할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즐거운 인생>의 플롯은 (링크한 이전 글에서 지적한대로) 아저씨들의 밴드놀이가 밴드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 사람들(그들의 가족을 비롯한 관객들)을 반강제로 질질 끌고 다녀야만 가능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밴드의 공연(연습 말고!)은 그 질과 관계없이 관객들의 성원과 호응을 전제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생순>의 선수들은 관중이 있든 없든 핸드볼 공을 던집니다. 실제로 2004년 경기를 중계했고 영화에서도 캐스터 역할을 맡은 최승돈 아나운서는 한국 응원단이 없어 자신이 해설위원과 함께 응원하는 역할까지 해야 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핸드볼은 그들에게 주어진 거의 몇 안 되는 당위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운 인생>과 <우생순>의 차이는 여기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해야 하는 것"의 차이로 변신합니다.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밴드/핸드볼의 존재와 관계없이 우리의 인생이 이전부터 험난했으며, 지금과 미래도 그러할 것임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습니다. 특히 <우생순>에서 미옥(문소리)의 남편(박원상)은 자살을 시도하며, 그 충격 가운데서 핸드볼 경기장으로 돌아온 미옥의 승부던지기는 실패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줄거리를 영화 스스로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명명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승부던지기를 앞두고 이를 언급하는 감독 승필(엄태웅)의 대사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다소 어설픈 감동의 강요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미옥에게 그런 순간이 소속팀 해체 + 채무 + 중태에 빠진 남편 등등의 중대한 위기들 속에서 찾아온다는 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런 장치가 관객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요? 전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색이 짙은 게임판에서 <즐거운 인생>의 아저씨들이 "아 난 몰라, 나 안 해, 나 안 해"라며 물러났을 때 <우생순>의 아줌마들은 "어휴, 이 찌질한 화상들!" 하고 타악 침을 한 번 뱉어주고서 여전히 필드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진짜 미덕은 타인을 보듬는 자세보다는 삶에 어떻게든 맞서고 뛰어들려는 태도에 있습니다. 게다가 그 뛰어들기란 (정성일의 표현을 빌어) 무모한 '자살적 제스처'라기보다는 남의 시선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버티고 견디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발산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즐거운 인생>은 '불온식품'의 타이틀을, <우생순>은 '건전식품'의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우생순>이 지나치게 무난하게 보이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지 않을까요? 어쨌든 이 아줌마들은 저 아저씨들 앞에서 "자, 보고 좀 배워!"라고 말할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단 그 주체가 반드시 여성이거나 아줌마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덧붙여둬야겠지만요.
- 포스터에 나온 배우들 사진이 아이돌 그룹 같다고 느낀 건 저뿐일까요......???

전반전. '세계 최초의 핸드볼 영화'라는 자체 타이틀을 앞세우고 보면 이 영화는 어디서도 듣도 보지도 못한 어떤 독특한 별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2004년에도 그랬듯이) 핸드볼이란 스포츠를 잘 모를 뿐더러 그리 큰 관심도 없습니다. (이제와서 까칠한 말이지만 지금의 우생순 열풍의 상당부분이 냄비근성에 기댄 가식이라고 생각하는 건 저뿐일까요?) 더구나 이 영화는 여성 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핸드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는 핸드볼 시합보다는 그 이전의 훈련 과정에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다가, 핸드볼 경기 장면이 실제 경기보다 감흥이 덜하다는 반응은 이미 여기저기서 나온 바 있습니다.
후반전. 이 지점에서 스포츠 영화 <우생순>을 "패스"해버린 사람들은 여성영화 <우생순>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시 하지만. <우생순>이 예찬하는 여성성(혹은 "아줌마의 힘")은 관객이 예상할만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조율되어 있습니다. (황진미의 말을 빌어) "끈질기고 관계 지향적이며 약자를 보듬는 아줌마성"을 이 영화에서 찾아낸 여성성의 미덕이라고 칭찬한다면 그건 우리가 이전부터 여러 차례 들어온 예찬의 반복입니다. 게다가 좀 편협한 소리이기도 해요.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혹자는 미련하고 바보같다고 코웃음칠) 사람들은 남자들 중에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사견을 전제하고 말한다면 요즘 남성성/여성성을 논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까먹고 넘어가는 것 같아요. 여성성/남성성을 지나치게 각 신체적 성의 고유한 특질로 몰아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 그러니까 문제는 <우생순>은 좋은 영화 같은데 <우생순> 자체만 놓고 보면 지나치게 무난하게 좋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줄거리나 연출은 대중영화의 틀 안에서 크게 모나지 않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서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무엇이 어떻게 좋다고 말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연장전. 이 시점에서 제가 제안하고자 하는 방법론은 타임머신을 뒤로 돌려 비교대상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영화 씬에서 <우생순>과 가장 비슷한 카테고리 안에 위치시킬 수 있는 영화가 뭐겠습니까? 저는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조: 즐거운 인생: 불온식품)
<즐거운 인생>은 뒤늦게 광대놀이에 빠져든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생순>과 함께 현재 한국의 장년층들이 빠져든 삶의 고통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짝을 지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즐거운 인생>의 아저씨들은 돈벌이도 안 되고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하게 되자 그 탈출구로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하고, <우생순>에서 세계 수준의 기량을 자랑하는 아줌마 선수들은 빚에 쫓기고 이혼경력 때문에 손가락질 당하고 약물복용으로 불임이 되면서도 핸드볼 팀으로 기어들어옵니다. 방금 쓴 문장에서 혹자는 이미 두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차이는 "되자"와 "당하면서도"의 차이입니다. 고통 앞에서 아저씨들이 허무주의적 유희로의 도피를 택한다면, 아줌마들은 그 고통을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태도는 결국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굳이 어느 한 편에 손을 들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주목할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즐거운 인생>의 플롯은 (링크한 이전 글에서 지적한대로) 아저씨들의 밴드놀이가 밴드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 사람들(그들의 가족을 비롯한 관객들)을 반강제로 질질 끌고 다녀야만 가능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밴드의 공연(연습 말고!)은 그 질과 관계없이 관객들의 성원과 호응을 전제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생순>의 선수들은 관중이 있든 없든 핸드볼 공을 던집니다. 실제로 2004년 경기를 중계했고 영화에서도 캐스터 역할을 맡은 최승돈 아나운서는 한국 응원단이 없어 자신이 해설위원과 함께 응원하는 역할까지 해야 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핸드볼은 그들에게 주어진 거의 몇 안 되는 당위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운 인생>과 <우생순>의 차이는 여기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해야 하는 것"의 차이로 변신합니다.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밴드/핸드볼의 존재와 관계없이 우리의 인생이 이전부터 험난했으며, 지금과 미래도 그러할 것임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습니다. 특히 <우생순>에서 미옥(문소리)의 남편(박원상)은 자살을 시도하며, 그 충격 가운데서 핸드볼 경기장으로 돌아온 미옥의 승부던지기는 실패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줄거리를 영화 스스로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명명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승부던지기를 앞두고 이를 언급하는 감독 승필(엄태웅)의 대사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다소 어설픈 감동의 강요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미옥에게 그런 순간이 소속팀 해체 + 채무 + 중태에 빠진 남편 등등의 중대한 위기들 속에서 찾아온다는 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런 장치가 관객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요? 전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색이 짙은 게임판에서 <즐거운 인생>의 아저씨들이 "아 난 몰라, 나 안 해, 나 안 해"라며 물러났을 때 <우생순>의 아줌마들은 "어휴, 이 찌질한 화상들!" 하고 타악 침을 한 번 뱉어주고서 여전히 필드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진짜 미덕은 타인을 보듬는 자세보다는 삶에 어떻게든 맞서고 뛰어들려는 태도에 있습니다. 게다가 그 뛰어들기란 (정성일의 표현을 빌어) 무모한 '자살적 제스처'라기보다는 남의 시선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버티고 견디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발산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즐거운 인생>은 '불온식품'의 타이틀을, <우생순>은 '건전식품'의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우생순>이 지나치게 무난하게 보이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지 않을까요? 어쨌든 이 아줌마들은 저 아저씨들 앞에서 "자, 보고 좀 배워!"라고 말할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단 그 주체가 반드시 여성이거나 아줌마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덧붙여둬야겠지만요.
by lyh1999
2008/08/17
2008/08/17
# by | 2008/08/17 14:34 | Journals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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